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철순/선수 경력 (문단 편집) === 1995~1996년 === 1994시즌이 끝나고 '''윤동균 감독이 사퇴하면 나도 은퇴하겠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유는 [[OB 베어스 항명파동]]이라는 최악의 사태의 중심인물 중 하나가 박철순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최고참인 자신이 책임지고 은퇴하겠다는 뜻. 그러나 신임감독인 [[김인식]]은 원만한 처리를 요구했고, PC통신 등에서도 박철순의 은퇴를 반대했다. 당시 사회분위기는 체육계의 폭력 등으로 문제를 빚고 있었기에 여론은 선수단에 어느 정도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박철순을 그대로 방출시키면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없던 점도 한몫했다. 그래서 1995 시즌은 5선발로 뛰었고 9승을 따내며 원년 다음으로 많은 승수를 기록했다. [[1995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해 [[강성우]]와 [[김민재(내야수)|김민재]]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우승이 결정되고서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당시 화면을 보면 백발이 군데군데 있던 노신사를 붙잡고 그야말로 대성통곡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박철순이 얼싸안고 함께 울었던 사람은 초대 OB 단장 출신이자 OB 사장을 지냈던 박용민 당시 춘천CC 사장이었다. 미국에 있던 박철순을 한국으로 직접 데려온 인물인데 박철순은 박 전 사장을 정신적 지주로 생각한다고 한다.]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박철순은퇴식.jpg|width=100%]]}}} || || '''{{{#FFFFFF 1997년 은퇴식에서 마운드에 입 맞추는 장면}}}''' || [[1996년]] 시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구단에서 1997년 4월 29일 잠실 [[LG 트윈스|LG]]전 때 은퇴식을 열어 주었으며, 그의 등번호인 2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이 때 은퇴식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원래 박철순은 은퇴식에서 이벤트성 선발로 1이닝 동안 등판하려 했었다. 이 때 상대 팀이었던 [[LG 트윈스]] 타자들이 먼저 찾아와서 박철순을 위해 "[[삼진(야구)|형님께서 가운데로 던져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스윙 세개하고 물러나겠습니다.]]"고 제안했지만 박철순은 '''"내가 어떻게 지켜온 마운드인데, 거기서 장난질 치는 것 같고 그래서는 도저히 등판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를 거절하고 은퇴식만 치뤘다고 한다. 박철순이 선수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지녔는지를 알 수 있는 훌륭한 사례. 또한 [[승부 조작|수단은 옳지 않았지만]] 박철순을 라이벌 팀의 고참이 아닌 야구계의 선배로 대우하고, 그를 위해 삼진을 자처한 LG 타자들의 행동 역시 미담으로 꼽힐만 하다.[*출처 [[김은식]] 저, 한국 프로야구 결정적 30 장면 194P] 은퇴식 때는 여러 사람들이 나서서 축하 인사를 전했는데 그 중에는 불과 2년여 전 [[OB 베어스 항명파동|항명파동]]으로 얼굴을 붉혔던 전 감독이자 절친했던 선배 [[윤동균]]도 있었다.[* 은퇴식 당시 항명파동에 대한 서로의 앙금은 사라진 상태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OB 베어스 항명파동]] 문서 참조.] 이때 박철순이 눈물을 흘렸다. 한편 이날 경기는 LG가 7:1로 승리, 10연승을 이어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